노관규 순천시장이 6일 순천만국가정원을 방문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찾아가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정창래TV 갈무리
지난 6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순천만국가정원을 방문했다. 서문에서 동문 쪽 ‘캔들라이트 행사’를 향해 걷던 중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나타났다. 노관규 순천시장이었다.
노관규 시장은 정청래 의원에게 “예고 없이 오셔가지고 저기서 여기까지 (급히) 왔어요” 하면서 아주 반갑게 인사했다. 캔들라이트 행사를 위해 현장에 있었던 노 시장이 시청 직원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온 듯했다.
두 사람은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시간이 다소 흐르자 정 의원은 부담을 느꼈는지 “시장님, 이렇게 (혼자) 놀다 갈게요”하며 헤어지려고 했다. 노시장은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는데”하며 갑자기 동생한테 얘기하는 거라면서, 황당하지만 준비된 듯한 말을 건넸다.
“야, 순천에서 내가 권리당원이 제일 많다. 내가 말로만 무소속이지, 무소속인지 아냐? 니(너) 지금?”
노 시장은 결국 이 한마디 말을 하기 위해 정 의원에게 온 듯하다. ‘정청래TV’를 통해 생중계된 이 장면은 이재명 정부 하에서 내년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에 대한 노 시장의 복잡한 정치적 셈법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정청래 의원의 이날 방문은 차기 유력한 민주당 당 대표 주자로,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호남을 찾아 민심을 다지는 행보였다. 노관규 시장은 정 의원에게 자신이 순천에서 민주당 권리당원을 가장 많이 보유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나는 여전히 민주당 내에서 영향력이 크다”는 신호를 주어, 향후 복당이나 당내 역할 재개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지역 정가에서는 노 시장의 복당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노 시장과 순천대 의대나 소각장 등 지역 현안을 두고 갈등을 빚어온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순천갑 국회의원도 공식적으로 노 시장의 복당에 대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말로만 무소속이지 무소속이 아니다?"
노 시장의 “말로만 무소속”이라는 발언은 민주당 조직과 권리당원 네트워크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복당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도, 무소속 신분을 유지한 채 민주당 경선이나 지역 정치에 비공식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실제로 순천에서는 민주당 당적을 유지한 채 노 시장을 지지하는 권리당원, 지역 인사들이 적지 않다.
지역 정가에선 노 시장 측근들이 민주당 권리당원 모집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정황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실제로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순천지역 민주당 예비후보들 사이에 ‘관권선거’ 논란이 불거졌고, 보조금 지원 단체와 현직 통장이 특정 후보를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고발까지 이어졌다. 노 시장은 “선거에 개입하지 않았다”며 공개적으로 반박했지만, 권리당원 동원 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순천은 민주당의 뿌리가 깊지만, 국민의 힘과 무소속 후보가 시장에 당선된 지역이다. 어떻게 보면 순천은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과 정부에 호의적인 편이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민주당 소속의 후보가 시장이 되고, 국민의힘이 집권하면 국민의힘이나 무소속이 당선됐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지 3개월 만에 치러진 순천시장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노 시장은 민주당에 비판적이고 국민의힘에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민주당에 비판적이고 국민의힘에 우호적인 태도
노관규 시장의 민주당 비판은 2022년 시장에 당선되자마자 시작됐다. 노 시장은 당선 소감에서 “이번 선거에서 시민들은 공정과 상식을 외면한 더불어민주당에 회초리를 들었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착각으로 오만해진 민주당 후보가 아니라 무소속 후보를 당선시켜주신 것”이라고 말해 지역사회에 강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에도 “민주당 옷 입으면 당선이다, 이거 안일한 생각 버려야 한다. 호남 정치가 박수 못 받는 이유는 위에서 자기들 편한 사람 내려 보내고, 지역정치는 또 자기들 편한 사람 심어놓고 결국 이러다 경쟁력을 잃은 게 호남 정치다. 텃밭 정치가 이제 경쟁 체제로 가야 한다”는 등 민주당의 공천 구조와 지역 독점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반면, 국민의힘과의 협력에는 적극적이다. 2024년 “지금 대통령이 3년 동안 윤석열이다. 이런저런 현안들이 현재 야당 힘으로는 안 된다”며 집권여당과의 실용적 연대를 강조했다. 실제로 순천 현안 설명회, 국립의대 유치 등 주요 사안에서 국민의힘 인사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고, 대통령실에 지역 여론을 직접 전달하는 장면도 여러 차례 목격됐다.
전국공무원노조 순천시지부 게시판에는 노관규 시장의 발언을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무소속 노관규 순천시장의 수상한 고백’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노관규 시장의 이번 발언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이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펼쳐질 ‘권리당원 선점 경쟁’의 서막이자, 정치적 알박기의 예고편”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은 지금이라도 경계해야 한다. 겉으로는 무소속이지만 실상은 당내 질서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정치적 침투자들이 지역기반을 동원해 경선을 흔들려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와 민주주의 전체에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시판 글은 이어서 “무소속을 표방한 노관규 시장의 이면에 자리한 것은 단순한 존재 과시가 아닌, 권력을 향한 집착과 기형적 정치공작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민주당 당적을 오직 자신의 출세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음습한 사람에게 절대로 복당을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순천의 한 정치인은 “노관규 시장의 발언은 자신의 조직력과 영향력을 과시함으로써, 지역 내 민주당 세력과의 협상력을 높이고, 차기 선거나 정치적 입지를 확대하기 위한 포석으로 비친다”며 “당적 없는 시장이 민주당 경선의 핵심 세력인 권리당원을 관리하는 것은 정당 경선의 공정성을 흔들고, 민주주의 질서를 헤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