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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하근 전 더불어민주당 순천시장 후보 |
도시는 오랫동안 돈으로 움직인다고 믿어왔다. 예산을 세우고 계획을 만들며 집행을 마치면 도시는 굴러간다고 여겼다. 얼마를 썼는지, 얼마나 정확히 집행했는지가 성과의 기준이었고, 회계가 정리되면 한 해는 무사히 넘어간 것으로 간주됐다. 이 방식은 한동안 유효했다. 도로는 유지됐고 시설은 돌아갔으며 도시의 일상도 큰 균열 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의 도시는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인구의 흐름은 빨라졌고 산업의 수명은 짧아졌으며, 기후와 기술은 도시 운영의 전제를 바꿔놓았다. 예산을 집행하는 능력만으로 도시의 방향을 붙잡을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 돈을 쓰는 기술과 도시를 움직이는 방식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관리가 아니라 설계다.
설계란 계획서를 늘리는 일이 아니다. 도시가 굴러가는 논리와 방식, 반복되는 선택, 그로 인해 축적되는 결과를 정하는 일이다. 관리의 언어가 아니라 방향의 언어다. 여기서 기획은 출발점이 된다. 기획은 자산을 나열하는 작업이 아니라, 흩어져 있던 요소들을 한 장의 지도 위에 올려놓고 연결과 위험,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순천의 정원과 생태, 농촌과 도시, 원도심과 신도심, 관광과 환경, 기본사회와 재정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서로 얽혀 있다. 기획의 역할은 이 얽힘을 인정하고 도시가 향할 방향을 하나로 묶는 데 있다. 이 순간부터 기획은 조정이 아니라 결단이 된다.
투자는 그 결단에 무게를 싣는다. 전통적인 공공투자가 눈에 보이는 시설에 집중돼 왔다면, 앞으로의 도시는 다른 곳에 자본을 놓아야 한다. 주거는 인구의 흐름을 바꾸는 기반이 되고, 기본고용은 돌봄과 생태, 공익 노동을 도시의 필수 기능으로 끌어올린다. 정원과 생태에 대한 투자는 기후 대응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산업을 여는 선택이며, 데이터와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투자는 행정 효율을 넘어 서비스와 시장을 만들어낸다. 이때 투자는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사들이는 선택으로 바뀐다.
플랫폼은 선택을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게 만든다. 사업은 끝날 수 있지만, 플랫폼은 남는다. 정원과 생태 산업이 지속되려면 기업과 연구, 교육과 시민이 연결돼야 하고, 에너지 전환 역시 설비 몇 개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책과 재정, 기술과 참여가 함께 움직일 때 변화는 축적된다. 플랫폼은 도시의 시간이 쌓이는 방식이다.
이 모든 과정은 환류가 있을 때 지속된다. 도시가 만든 성과가 시민의 삶으로 되돌아오지 않는 순간 신뢰는 무너진다. 개발 이익이 주거 안정과 공공서비스로 이어지고, 관광 수익이 지역 상권과 로컬 브랜드로 흘러들며, 공공 투자로 시작된 산업이 양질의 일자리와 지역 기업의 성장으로 연결될 때 도시의 선택은 설득력을 갖는다. 환류는 기술이 아니라 약속이다. 약속이 지켜질 때 다음 설계가 가능해진다.
기획·투자·플랫폼·환류는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라도 빠지면 도시는 다시 관리의 언어로 후퇴한다. 네 가지가 함께 작동할 때 행정은 관리자가 아니라 전략 조직으로 전환된다.
이 전략을 실행하는 주체가 주식회사 순천이다. 도시의 방향을 먼저 정하고, 그에 맞춰 자산과 정책을 재배치하며 공공이 선제적으로 위험을 감수해 새로운 영역을 여는 구조다. 공사·공단·특수목적법인을 통해 도시의 자산과 위험, 성과와 지분을 하나의 전략 아래 설계하고 운영한다.
순천은 이미 조건을 갖고 있다. 순천만에서 동천, 국가정원으로 이어지는 연속된 공간, 정원과 습지, 도심과 농촌이 맞물린 구조는 기후와 생태를 읽고 자연 기반 해법을 시험할 수 있는 드문 무대다. 많은 도시가 비용을 들여 만들려는 조건을 순천은 이미 지니고 있다.
정원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산업의 무대다. 토양과 물, 기후와 설계, 치유와 교육, 경험과 콘텐츠가 얽힌 복합적인 장이다. 정원 설계와 관리 기술, 정원 교육과 돌봄 프로그램, 정원을 매개로 한 체류형 관광과 콘텐츠 산업은 모두 여기서 파생된다. 농촌과 도심의 결합 역시 재생에너지와 친환경 농업, 로컬푸드와 순환경제로 확장될 수 있다. 따로 보면 자원이지만, 함께 설계되면 산업이 된다. 이런 도시에서 생태는 보호에 머물 수 없다. 생태는 도시를 움직이는 전략이 되어야 한다. 생태는 기후 변화 앞에서 도시를 지키는 방어막이자, 새로운 산업과 일상을 동시에 떠받치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도시는 더 이상 관리와 돈을 쓰는 조직으로 머물 수 없다. 성과를 내고, 축적된 성과와 이익을 시민에게 되돌려줘야 한다. 전략 실행조직으로서 주식회사 순천이 작동하는 순간, 순천은 관리되는 도시를 넘어 미래를 만들어내는 도시로 이동한다.
동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