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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브룩스 |
[동부뉴스=조성진 기자] 22년 동안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는 미국 정치 담론에서 보기 드문 유형의 사상가였다. 그는 이념 전쟁의 최전선에 서기보다, 그 전선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도덕적 토대와 문화적 습관을 탐구해 왔다. 정치 평론가라기보다 ‘도덕 철학을 쓰는 저널리스트’에 가까웠다.
브룩스는 스스로를 “보수적인 민주당원”이라고 규정한 적이 있다. 1980년대에는 경기 침체를 핵심 문제로 보고 공화당에 기울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불평등을 더 심각한 위기로 판단해 민주당 쪽으로 이동했다. 사형제도에는 좌파적 입장을, 낙태에는 보수적 입장을 취한다. 이념적 일관성보다 도덕적 직관의 일관성을 중시하는 태도다.
그의 보수주의는 프랑스 계몽주의식 ‘이성 중심 설계’에 대한 경계에서 출발한다. 사회는 논리적으로 재설계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니라, 관습과 예절, 도덕 감정이 오랜 시간 축적된 유기체라는 관점이다. 따라서 사회 변화는 급진적이어서는 안 되며, 점진적이고 실험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기본 입장이다. 이성보다는 훈련된 감정과 전통의 축적을 더 신뢰하고, 급진적 개혁보다 점진적 변화를 선호한다.
브룩스는 정치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는가?” 그가 전국 고등학생에게 추천한 책은 빅터 프랭클의 『인간의 의미 탐색』(Man's Search for Meaning)이다. 물질적 성공이 아니라 삶의 의미가 인간을 지탱한다는 통찰을 반복해서 강조해 왔다.
오늘의 청년 세대를 “사회적·정서적·정신적 위기를 물려받은 세대”라고 진단하면서,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능력—타인의 슬픔 곁에 머무는 법, 존중하며 이별하는 법, 품격 있게 대화하는 법—을 배우라고 조언한다. 브룩스의 세계관에서 정치 위기의 근원은 제도 실패 이전에 ‘관계 실패’에 있다.
브룩스의 경력에서 가장 힘든 칼럼으로 꼽힌 것은 2004년 이라크 전쟁 지지 입장을 재검토한 글이었다. 그는 그 전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친구들의 분노와 비판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글은 브룩스가 단순한 이념 논객이 아니라 자기 수정이 가능한 사상가임을 보여준 계기였다.
그 이후 그는 확고한 우파에서 ‘모호한 중도’로 이동했고,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정치적 이동만이 아니라, 인간 이해의 깊이가 더해졌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도 브룩스는 낙관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은 1890년대의 부패와 인종 테러, 1920년대의 배타주의, 1960년대의 폭동과 암살을 겪고도 회복해 왔다고 강조한다. 수 세기 동안 미국이 인종차별과 성차별로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지만, 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인적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역사 인식은 단선적 진보론이 아니라, ‘분열과 회복이 반복되는 순환 구조’에 가깝다. 위기 국면은 회복의 전조일 수 있다는 신념이다.
브룩스는 이념의 소음을 줄이고, 도덕적 언어를 복원하려 한 칼럼니스트였다. 그의 글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날카로운 논쟁 때문이 아니라, 복잡한 시대에 겸손과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태도 때문이다.
다음은 데이비드 브룩스가 뉴욕타임스에 쓴 마지막 칼럼을 5가지 주제로 나누어 요약 편집했다.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 믿음의 붕괴
“가장 큰 흐름은 미국인들이 집단적으로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2003년에는 민주주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라는 믿음, 기술에 대한 믿음, 서로에 대한 믿음이 더 컸습니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국력에 대한 자신감을 산산조각 냈습니다.”
“금융 위기는 자본주의가 안정적인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을 무너뜨렸습니다.”
“인터넷은 깊은 연결의 시대를 가져오기는커녕 우울감과 적대감, 고독을 키웠습니다.”
“사회적 신뢰의 붕괴는 이웃에 대한 믿음의 총체적 상실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는 더 슬프고, 더 냉혹하고, 더 비관적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쇠퇴하고 있으며, 엘리트들은 일반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브룩스가 진단한 오늘 미국의 핵심 위기는 정치 이전에 ‘믿음의 상실’이다. 종교적 믿음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시장·기술·이웃·국가 서사에 대한 집단적 신뢰가 동시에 약화됐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재의 양극화를 단순한 정치적 갈등이 아니라, 신뢰 자본의 붕괴로 본다. 신뢰가 무너지면 민주주의는 기능을 잃고, 공동체는 ‘경쟁적 부족’으로 분열된다는 것이다.
허무주의의 유혹 ― “아무것도 믿지 않는 시대”
“믿음의 상실은 아무것도 믿지 않게 만듭니다.”
“허무주의는 더 낮은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주장하는 사고방식입니다.”
“트럼프가 미국을 타락시켰다고 말하고 싶은 유혹이 들지만, 이는 수십 년에 걸친 내부적 가치 붕괴의 결과입니다.”
“40년간의 극단적 개인주의는 개인의 선택권을 확대했지만,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을 약화시켰습니다.”
믿음의 상실은 단순한 회의가 아니라 허무주의로 이어진다. 브룩스는 이를 “더 낮은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믿는 사고방식”이라 정의한다. 브룩스는 트럼프 현상을 원인이라기보다 결과로 본다. 극단적 개인주의, 시장 중심 교육, 도덕의 사유화가 장기적으로 축적되며 허무주의적 문화 토양을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인본주의의 상실 ― “공유된 도덕 질서가 사라질 때”
“우리는 인본주의적 핵심을 버리고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화적 상처는 공유된 도덕 질서의 상실입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공유된 기준이 없으면 사회적 결속과 신뢰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는 무엇이 진실이고 아름답고 선한지에 대한 폭넓은 합의가 없는 벌거벗은 공공 광장을 만들어냈습니다.”
“모든 건강한 사회는 공유된 신성한 개념에 기반을 둡니다.”
브룩스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공유된 도덕 질서의 붕괴다. 도덕을 개인 취향의 영역으로 밀어 넣은 ‘도덕의 사유화’를 문제 삼는다. 그는 이를 문화적·문명적 위기로 규정한다. 공통의 이상이 사라질 때, 공적 공간은 냉소와 공격성으로 채워진다는 경고다.
문화가 먼저다 ― “정치보다 깊은 영역”
“문화적 변화는 정치적, 사회적 변화에 앞섭니다.”
“방향 전환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사고방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제가 말하는 문화는 공유된 삶의 방식, 습관과 의례, 대중적인 노래와 이야기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주변에 도덕적 생태계를 만들어갑니다.”
“예절은 법보다 더 중요합니다.”
브룩스는 정치 권력 교체만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하다며, 해결책을 정치가 아닌 문화의 영역에서 찾는다. 문화란 단순한 예술 소비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도덕적 생태계를 뜻한다. 도덕적 습관, 공동체적 서사, 인간 존엄을 강조하는 문화적 재건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회복의 가능성 ― “희망·믿음·사랑·용서”
“저는 여전히 우리가 도덕적인 동기에 의해서도 움직인다고 믿습니다.”
“삶은 움직임이며, 이상을 위해 애쓰는 삶이 번영하는 삶입니다.”
“미국이 정서적·물질적·정신적 기반을 회복할 수 있다면 과거의 대담함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받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랑으로… 그리고 궁극적인 사랑의 형태인 용서로 구원받아야 합니다.”
칼럼의 마지막은 절망이 아니라 도덕적 낙관으로 끝난다. 브룩스는 인간이 여전히 선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믿는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도덕적 책임의 결합이다. 냉소 대신 인본주의, 허무주의 대신 용서를 선택하라고 독자에게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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