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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하근 전 더불어민주당 순천시장 후보 |
도시는 언제나 가장 먼저 변화를 맞는다. 변화는 선언문처럼 크게 울리지 않는다. 골목의 가게가 하나 사라지고, 버스 시간표가 조용히 바뀐다. 한 세대가 떠난 자리에 다른 세대가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 쌓이면, 도시는 어느 순간 예전과 다른 얼굴을 갖는다.
한때 도시의 미래는 단순했다. 공장을 세우고 사람을 모으면 성장했다. 연결망을 넓히고 서비스를 늘리면 경쟁력이 생겼다. 지금은 다르다. 인구는 줄고, 일자리는 바뀌고, 기후는 도시의 안전과 비용을 동시에 흔든다. 기술은 경제의 판을 바꾼다. 변화는 하나씩 오지 않는다. 겹쳐서 몰려오고, 서로를 더 빠르게 만든다.
이런 시대에 과거의 도시 운영 방식이 그대로 통할 거라 믿는 건 위험하다. 성장이라는 말 하나로 다음 세대의 삶을 설명하기도 어려워졌다.
순천은 자연과 생태를 지켜온 도시다. 국가정원 제1호라는 이름은 우연이 아니다. 공공의 선택과 시민의 참여가 오랜 시간 쌓여 만든 결과다. 동천을 따라 이어지는 일상, 순천만과 정원이 만들어낸 풍경은 도시의 얼굴이 됐다. 많은 시민이 이 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도시는 멈춰 서 있을 수 없다. 강점도 가만히 두면 힘을 잃는다.
정원은 다른 도시에서도 만들어진다. 방문객 숫자가 지역 경제를 떠받치지 못하고 있다. 청년은 떠나고, 읍·면에서는 학교와 병원, 상점과 교통이 하나씩 사라진다. 원도심에는 빈 점포가 늘고, 예전처럼 공단과 제조업만으로 미래를 버티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폭우와 폭염 같은 기후 변화까지 겹치면서 도시의 선택지는 더 좁아진다.
그렇다고 순천이 쇠퇴의 길로만 가는 도시는 아니다. 다른 도시가 갖기 힘든 자산이 여전히 남아 있다. 정원과 순천만, 동천으로 이어지는 생태의 흐름. 도심과 농촌이 맞닿은 생활권. 짧은 이동 시간 안에 다양한 공간이 연결되는 구조. 중간 규모 도시가 가진 실험의 여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온 경험까지. 위기와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관건은 이것들을 따로 보지 않는 데 있다.
인구 감소, 농촌의 변화, 원도심의 약화, 산업의 정체, 기후 압력은 서로 연결돼 있다. 반대로 생태와 정원, 도시와 농촌, 시민 공동체의 경험도 하나로 묶을 수 있다. 도시의 자산을 흩어 두지 말고, 한 방향으로 써야 할 때다.
이 지점에서 ‘주식회사 순천’이라는 말이 나온다. 처음 들으면 낯설다. 도시를 기업처럼 만들겠다는 뜻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핵심은 다르다. 도시는 예산만 쓰고 시설만 관리하는 곳에 머물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도시가 가진 땅과 공간, 자연과 브랜드를 전략적으로 배치하고, 필요하다면 공공이 먼저 위험을 감수해 새로운 길을 열겠다는 선택이다. 순천을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는 도시로 보겠다는 뜻이다.
이 방식은 이미 국가가 해왔던 일과 닮아 있다. 인터넷과 GPS, 반도체와 통신, 배터리 기술의 출발선에는 공공 연구와 공공 투자가 있었다. 민간이 망설이던 구간에서 공공이 먼저 들어갔고, 그 위에서 시장이 자랐다.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가 말한 ‘기업가형 국가’는 이런 현실을 설명하는 말이다.
중요한 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이다.
공공이 위험을 감수했다면, 성과도 다시 사회로 돌아와야 한다. 부담은 모두가 함께 지는데, 이익은 일부만 가져가는 구조가 반복되면 신뢰는 무너진다. 그래서 전환의 시기에는 생활을 지탱하는 바탕이 필요하다. 주거와 의료, 돌봄과 교육, 이동이 흔들리지 않아야 시민도 변화를 받아들인다. 기본사회 논의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순천 규모에서는 이 논리가 더 또렷하다. 어디에 살든 최소한의 생활이 유지되는 도시여야 청년도, 기업도 새로운 선택을 한다. 주식회사 순천은 바로 이 기본 인프라를 설계하고, 투자하고, 운영하는 장기적 플랫폼이다. 단기 사업을 반복해서는 닿기 어려운 미래를, 도시 스스로의 자산과 선택으로 열겠다는 결단이다.
순천이 스스로를 다시 정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원을 지켜온 도시가 정원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 생태의 성취가 시민의 삶과 도시의 미래로 이어지기 위해서, 지금은 선택의 시간이다.
(오하근 전 더불어민주당 순천시장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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