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당초등학교 정문 앞. 우비를 입은 서선란 후보(더불어민주당 순천시의원 라선거구)는 우산을 쓰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간혹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학부모가 보이면 90도 폴더인사를 했다. 비에 젖은 운동화 끝이 조금씩 물들어가고 있었다.
한 어머니가 지나가며 “비오는데 고생한다”는 말을 건넸다.
지지를 약속하는 말도 아니고 표를 주겠다는 뜻도 아니었다. 하지만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에겐 그 말은 가슴에 남는다. 당신이 애쓰는 걸 보고 있다는 뜻. 하루 종일 웃고 인사하면서도 사실은 혼자 버티고 있다는 걸 누군가는 알아봤다는 뜻이다.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한 지는 13일째다. 거슬러 민주당 예비후보를 뽑는 경선까지 감안하면 4월부터다. 전략공천으로 ‘1-나’를 주겠다는 당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후보와 똑같이 겨루겠다는 무모한 오기 덕분에 처음부터 온 힘을 쏟아야 했다.
비 오는 날이면 용당동 하나로마트 사거리에 섰고, 맑은 날이면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경선이 끝난 뒤에도 속도는 늦춰지지 않았다. 매곡동 경로당과 중앙동 시장, 향동 골목과 저전동 주택가를 돌며 서선란은 사람들 틈에 있었다.
“거기 말고 여기 와서 같이 앉아” 저전동 경로당 어르신 말 한마디에 서선란은 긴장이 풀리며 그대로 바닥에 앉았다.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 눈물을 훔쳤다. 선거운동은 때때로 정치가 아니라 사람의 정을 느끼고 기대는 일처럼 여겨졌다.
“공약보다 표정”
시장에서는 늘 먹고사는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요즘 장보기가 무섭다”는 말. “국가정원 손님은 많은데 여기까지는 안 온다”는 원도심 상인의 한숨. 서선란은 관광객을 원도심 상권으로 오게 하는 교통비 지원정책을 설명했고, 관공서와 학교 주차장을 야간에 개방하는 공약도 이야기했다.
하지만 시민들이 더 오래 바라본 것은 공약보다 서선란의 표정이었다. 끝까지 말을 끊지 않고 듣는 얼굴. 쉽게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얼굴. 그 얼굴에는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주민들의 청원과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4월 30일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한쪽 벽면을 채운 “지역민의 목소리는 서선란을 뛰게 합니다” 현수막은 그 얼굴을 기억하며 썼다.
5월 21일 드디어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만용에 가까운 오기 덕분에 서선란은 ‘1-가’를 받았고, 그 덕분 덕에 주민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받았다.
서선란에게 칭찬과 격려는 반드시 갚아야 하는 채무다. 선거운동 첫날 걸린 현수막에 “이재명처럼 일하겠습니다” “서로 좋아 서선란” 슬로건은 그 채무를 갚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성원에 대한 보답이다.
중앙동에서는 공영주차 이야기가 나왔고, 저전동에서는 경로당 이야기가 나왔다. 삼산동 어르신들은 파크골프장 이야기를 꺼냈다. 골목마다 민원은 달랐지만 분위기는 비슷했다. 낯선 정치인을 대하는 거리감보다는 오래 본 사람을 대하는 표정에 가까웠다.
4년 동안 의회에서 조례를 만들고 예산 문제를 지적했던 시간보다, 시장 골목과 경로당에서 인사를 나눈 시간이 시민들에게는 더 선명하게 남아 있는 듯했다.
“결국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
13일 동안 가장 큰 호응을 받은 공약은 ‘추석 민생지원금 제도화’였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지원이 아니라, 조례와 특별회계를 통해 매년 자동 지급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민생지원금을 시장의 이벤트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바꾸겠다는 이야기였다.
그 공약이 실제로 실현될지는 아직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쩌면 정책의 완성 여부 이전에, 누군가 자신의 생활을 정치의 중심에 올려놓고 있다는 감각인지도 몰랐다.
선거운동이 막바지로 갈수록 후보들의 얼굴은 조금씩 닮아간다. 목은 쉬고 다리는 붓고, 웃는 얼굴 뒤로 피로가 겹겹이 쌓인다. 유세차 위에서는 음악이 울리지만, 실제 선거운동의 대부분은 거리와 골목, 상가에서 이루어진다.
하루에도 수백 번 허리를 숙이고, 이름을 기억해달라고 인사하고, 때로는 외면당한다. 그래서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오래 남는 말은 거창한 응원이 아니다.
“비 오는데 고생한다”, “걱정하지 마 당선될 거야” 라는 말 한마디. 4년전 같이 셀카를 찍었다며 반가워하는 학생. 그리고 수줍게 “서로좋아 서선란”을 따라 말하던 목소리 같은 것들이다.
6월 2일 저녁 7시 30분. 서선란 선거사무소 앞 사거리에 가족과 선거운동원들이 모두 모였다. 두 달의 선거운동을 끝내며 주민들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과분한 사랑과 격려 잊지 않겠습니다. 의정활동으로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연설은 길지 않았다. 박수와 함성이 지나가는 차량에 묻혔다. 이윽고 서선란은 유세차에 올랐다. 공개연설 마감까지는 아직 세 시간이 남아 있었다. 오늘만 용당동, 가곡동, 향동, 웃장을 3번이나 돌았지만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후회와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2시간 뒤면 그는 또 혼자 어느 아파트 단지를 걷고 있을 것이다. 조용한 밤길에서 어깨를 짓누르는 피로를 묵묵히 견디며, 오늘이면 끝나는 선거운동의 마지막 시간을 지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선거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정치는 결국 거대한 구호보다, 어깨를 짓누르는 힘겨운 무게를 시지프스의 거인처럼 묵묵히 견뎌내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일. 그렇게 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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