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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시 연향들 도시개발사업 조감도 |
[동부뉴스=조성진 기자] 2021년 가을, 순천시는 조용히 오래된 약속을 깼다. 장기미집행 공원 부지를 사들이기 위해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부터 300억 5,000만원을 빌렸다. 2020년까지 지방채를 모두 갚고 '무차입 재정'을 자랑하던 도시가 다시 빚을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4년 뒤인 2025년, 채무는 1,160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난 2월 순천시가 공개한 「2026~2030 채무관리계획」에는 도시 재정의 급격한 변화가 담겨 있다. 2025년 한 해에만 859억원의 지방채가 새로 발행됐다. 명목은 '연향들 도시개발사업'이다.
연향동 일원 48만 8,000㎡ 부지에 호텔·리조트, 공동주택, 복합문화시설을 짓는 이 사업의 총사업비는 순천시 채무관리계획 기준 4,084억원에 달한다. 시는 지역개발기금 100억원, 지역상생발전기금 465억원, 금융기관 294억원을 빌려 사업 재원으로 삼았다.
2026년에는 254억원이 추가 발행될 예정이다. 연향들 사업에만 올해까지 1,113억 원의 지방채가 발행된다. 이렇게 되면 2026년 말 지방채 발행 누계액은 1,551억 5,000만원에 이르고, 2026년 상환 예정액 100억원을 제외한 채무 잔액은 1,313억 5,000만원으로 예상된다.
분양수익에 기대는 상환 구조… 재정리스크로 직결
현재 순천시 채무는 성격이 다른 두 축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일반회계 채무, 즉 공원·녹지 매입을 위해 빌린 300억 5,000만원이다. 이 채무는 2027년부터 10년간 세출예산으로 균분 상환하는 체계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정해진 일정대로 갚아나가면 된다.
문제는 공기업특별회계 채무다. 연향들 도시개발사업 추진을 위해 2025년 신규 발행한 859억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역개발기금 100억원, 지역상생발전기금 465억원, 금융기관 294억원으로 조달됐으며, 2026년에도 254억원이 추가 발행될 예정이다.
순천시는 2026년 100억원, 2027년 685억원, 2028년 466억원 등 총 1,251억원을 분양금 수익으로 조기상환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채무관리계획 어디에도 분양이 지연되거나 저조할 경우를 대비한 대안 재원이 명시돼 있지 않다. 연향들의 총사업비가 4,084억원에 달하는 만큼, 분양 리스크는 곧 재정 리스크와 직결된다.
서선란 순천시의원(향,매곡,삼산,저전,중앙동)은 “연향들 분양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 그 비용은 지금의 시민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세금으로 전가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순세계잉여금 활용 ‘0원’
2024년 순천시의 순세계잉여금은 1,084억 2,700만원, 2025년에는 956억 8,400만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채무관리계획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채무 조기상환에 쓴 금액은 0원이다.
지방재정법상 순세계잉여금은 이월, 기금 적립, 채무상환 등에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법적 문제는 없다. 다만 대규모 채무가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조기상환에 전혀 활용되지 않았다는 점은 재정 운용의 우선순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연된 사업, 커진 비용… 다음 세대 부담
연향들 사업은 행정 절차 지연으로 비용 증가 논란도 이어졌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2~3년 지체되는 동안 비용이 1,000억원 이상 늘었고, 부대비용까지 포함하면 1,500억원 수준”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이는 개인적 추정 발언으로, 공식 수치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사업은 2025년 2월 구역지정 고시 이후 본격화됐으며, 같은 해 12월 기공식을 거쳐 현재 분양이 진행 중이다. 시는 2028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재정이 즉각적인 위험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구조적 부담은 크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방채 상환은 결국 미래 세입으로 충당되는 만큼, 미래 세대가 과거 지출을 부담하는 구조가 된다”며 “장기채는 향후 수십 년간 재정 운용의 유연성을 제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분양 의존 탈피해야”…상환 구조 개선 필요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분양수익 단일 의존 구조’를 보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순세계잉여금을 채무 상환에 우선 투입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행정안전부는 2025년 2월 지방재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순세계잉여금 발생 시 지방채 상환에 먼저 활용하고 나머지를 통합재정안정화기금에 적립하도록 하는 체계적 처리 절차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법제화 이전이지만, 순천시가 이 방향을 자율적으로 선도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연간 900억~1,000억원대의 잉여금 중 일부라도 채무상환 적립금으로 미리 설정해두면, 분양 지연 시 충격을 완충할 수 있다.
또한 분양 일정과 연동돤 ‘채무상환 적립금’ 제도를 도입해 분양 지연 시에도 단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순천시 채무관리계획에는 분양 수익이 들어오는 2026~2028년 사이의 집중 상환 계획만 있을 뿐, 분양이 늦어질 경우를 대비한 단계적 적립 메커니즘이 없다. 지방재정 전문가들은 연도별 분양 목표와 연동한 '채무상환준비적립금'을 예산에 명시하고, 분양 진도율에 따라 상환 일정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방식을 권고한다.
아울러 의회의 상시 감시 기능 강화도 중요하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채무관리계획에서 순세계잉여금 활용 경로가 '채무상환 적립용'으로 표시되더라도, 실제로 어디에 쓰였는지 추적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서선란 의원은 “시의회가 분양 현황과 채무상환 이행 실적을 반기 또는 분기 단위로 점검하는 공식 보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늘어나는 지방채…‘관리 능력’이 핵심 변수
2025년 말 기준 전국 17개 시·도 본청의 채무 잔액은 41.8조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2020년 이후 연평균 8.9%씩 증가해 왔다.
나라살림연구소는 2022년 이후 안정세를 보이던 증가율이 2025년 9.1%로 다시 치솟은 것을 두고,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역지자체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 '정치적 경기순환' 현상의 사례로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광역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분석이지만, 기초지자체인 순천시에서도 대규모 개발사업에 따른 채무 급증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손종필 연구위원은 “지방채는 발행 자체보다 관리의 문제”라며 “명확한 상환 계획과 투명한 운영으로 주민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향들 부지에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삽이 들어가는 순간, 차입금의 무게도 함께 쌓이기 시작한다.
순천시가 제시한 상환 계획이 현실이 될지, 그 열쇠는 결국 분양 시장이 쥐고 있다. 그 결과가 확인될 때까지, 채무 관리는 행정과 의회, 시민 모두의 지속적인 점검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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