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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찍은 사진 한 장이 대수일까

2026-04-13 17:50 | 입력 :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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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세 후보기 함께 찍은 사진이 4월 10일 게재됐다
4월세 후보기 함께 찍은 사진이 4월 10일 게재됐다.

4월 10일 오후, 민주당 순천시장 후보 경선 결과가 발표된 후 언론과 소셜미디어에는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세 후보가 두 손을 높이 치켜들고 활짝 웃는 장면이었다. 경선에서 패배한 두 후보가 결과에 승복하고 단합한 성숙한 정치, 그렇게 읽혔다.

손훈모 후보는 4월 10일 순천시장 예비후보 경선 결과 발표 후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함께 했던 허석 후보님과 서동욱 후보님이 경선 결과를 받아들이시고, 즉시 저 손훈모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선언해 주셨습니다.
결선에 진출하지 못해 마음이 무척 괴롭고 정말 힘드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순천의 미래를 위해 흔쾌히 뜻을 모아주신 두 선배님의 용기와 결단에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 글은 문해력이 없는 사람이라도, 10일 경선 결과 발표 후 허석과 서동욱 후보가, “즉시”, “순천의 미래”를 위해 손훈모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읽힌다.

허석 후보도 4월 11일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몸과 마음이 힘들지만 순천의 미래를 위해 차선을 선택하였습니다. 서동욱 전 의장과 저는 손훈모 변호사를 지지하기로 하고 3자 회동을 하였습니다.”

이 글 어디를 봐도 4월 7일 미리 사진을 찍었다는 말은 없다. “(경선 탈락으로) 몸과 마음이 힘들지만 손훈모 후보를 지지하기로 하고 3자 회동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다. 문제의 사진은 경선 결과가 발표된 4월 10일이 아니라, 경선이 시작되기도 전인 4월 7일 오후 조례동의 한 카페에서 촬영됐다. 세 후보는 그날 정책 연대를 논의하며 만났고, '누가 결선에 진출하든 지지하자'는 뜻을 모은 뒤 각자 가운데에 서서 사진을 한 장씩 찍어뒀다. 손훈모 후보가 결선에 진출했으니, 그가 가운데 선 사진이 쓰인 것이다.

손훈모 허석 서동욱 후보는 4월 13일 기자회견을 했다
손훈모 허석 서동욱 후보는 4월 13일 기자회견을 했다.

손훈모, 허석, 서동욱 후보는 4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문제의 사진이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미리 찍은 연유를 설명했다.

허석 후보의 말이다. “여러분들이 후보로서 떨어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힘 쭉 빠지고 배터리 방전됐는데 (경선 결과 발표 후) 나오라고 하면 나오겠습니까? 그런데 뜻은 하나이니까 어떤 방법이 좋을까? 에너지가 있을 때 같이 사진을 찍는 겁니다. 저도 가운데서 옷 입고 찍었어요. 써먹지도 못했지만, 우리 서동욱 의장도 가운데서 찍었습니다. 이게 나쁜 짓인가요?”

나쁜 짓인가 아닌가. 잠시 이 판단을 보류해보자.

허석 후보가 말한 것처럼, 3월 27일부터 세 후보는 정책 연대를 공개적으로 논의했다. 4월 7일 모임 역시 그 연장선이었다. 

"가치와 생각이 비슷한 세 사람이 민주당 원팀을 위해 결선 진출자를 미리 지지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처음부터 밝혔다면, 이 사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이 사실대로 전달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가장 강력한 거짓말이다

2022년, 미국과 영국 정보당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연출 영상을 미리 제작했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를 먼저 공격하는 장면처럼 보이도록 촬영한 뒤, 침공 직후 "현재 벌어지는 도발"인 양 공개할 계획이었다. 

시점이 조작된 영상은, 그 자체로 전쟁의 명분이 될 수 있었다. 정보당국의 사전 폭로로 계획은 무산됐지만, 이 사례는 하나의 진실을 분명히 한다. 시점이 뒤바뀐 사진과 영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거짓을 만들어낸다. 규모는 다르지만, 작동 방식은 같다.

사진은 텍스트보다 훨씬 강력하게 감정에 작용한다. "두 손을 높이 치켜든 사진" 한 장은 수천 자의 설명보다 빠르게 서사를 완성시킨다. 그리고 그 서사가 한번 자리잡으면, 나중에 나온 정정 기사는 처음 사진이 퍼진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좁고 늦게 도달한다.

유권자가 잃는 것

유권자는 후보의 인품과 행동을 보고 투표한다. "경선 결과가 나오자마자 패자가 승자의 손을 잡아줬다"는 장면은 승복의 문화, 단합의 성숙함을 증거하는 듯 보인다. 그 장면이 연출된 것이라면, 유권자는 존재하지 않는 덕목을 보고 판단한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세 후보 모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들키지 않으면 괜찮다"는 학습이 일어난다. 이번에 큰 문제 없이 넘어가면, 다음에는 더 크고 대담한 연출이 따라온다. 정치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패턴이다.

선거 과정에서 형성된 소통의 방식은 당선 후에도 이어진다. 불편한 사실을 감추고 좋은 장면만 연출하는 것이 습관이 된 정치인은, 시장이 된 뒤에도 정책 실패를 숨기고 성과를 부풀리려 할 것이다. 사진 한 장의 시점 조작은 단순한 홍보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이 후보가 진실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주는 인품의 문제다.

백번 양보해서, "순천의 미래"가 진정으로 걱정됐다면, 4월 10일 저녁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세 사람이 다시 사진을 찍을 만한 에너지는 없었을까. 그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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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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