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서 태어나고 자라 지금까지 한 번도 순천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서동욱은 그야말로 순둥순둥하다. 비유하자면 물이랄까. 다투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흐른다. 막히면 돌아가고 틈새를 찾아 스며든다. 순하다.
사람들은 흔히 ‘순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순한 서동욱이 순천시장이 되겠다고 나섰다. 다투지는 않지만 결국 길을 만들어내는 물처럼.
조정래는 『태백산맥』에서 순천을 두고 “그 지세가 억센 탓에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고, 하늘의 힘으로 순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썼다.
순천을 다스리는 방식이 ‘강함’이 아니라 ‘순함’이라면, 24년 동안 시민에게서 답을 찾아온 서동욱이야말로 그 방식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인물일지 모른다.
사람을 알려면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다. 서동욱을 만나기 전, 그의 절친인 J씨에게 물었다. 24년 정치했으면 재산도 꽤 모았을 텐데 정말 없는 게 맞느냐고.
J씨는 답 대신 일화를 들려줬다. 1년 전 서동욱의 집에 함께 있다가 저녁으로 치킨을 주문했는데, 배달원이 집안을 힐끗 보더니 “여기 서동욱씨 집 맞아요?”라고 되물었다는 것이다. 도 의장까지 지낸 사람의 집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소박해 보인 모양이다.
공직자재산공개내역에 따르면 가족 전체 재산은 4억3천만 원. 배우자 명의의 연향동 대우아파트는 공시지가로 1억2400만 원이지만, 최근 실거래가는 2억3500만 원이다. 시가로 보면 전체 재산은 5억5000만원 정도 하는 셈이다.
87학번, 구속, 그리고 원칙 하나
서동욱은 87학번이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6월 항쟁을 온몸으로 겪었고, 순천대 총학생회장을 맡았다. 1990년 3당 합당 반대 여순 지역 연합 집회에서는 대학생협의회 의장으로 집회를 주도했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범죄경력에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집회및시위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써 있다. 이력만 보면 물보다 불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런 그가 정치에 입문하며 스스로에게 원칙 하나를 세웠다. “공적인 지위에서 사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겠다.”
그리고 24년이 흘렀다. 권력의 흐름이 바뀔 때마다 줄을 갈아타는 정치 현실 속에서도 그는 단 한 번도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말을 바꾸지 않는 정치인”, “의리의 정치인”이라 부른다.
순천에서는 서동욱을 흔히 서갑원의 사람이라 말한다. 물론 정치 입문은 허석 전 시장 추천으로 시작됐고, 두 사람의 삶의 궤적도 닮아 있다. 허석이 순천시민의신문 대표, 노동문제연구소 소장 등 노동·시민운동가 출신이라면 서동욱 역시 노동문제연구소 소장과 시민운동을 거쳐 정치에 들어왔다. 서갑원과 더 가까워진 것은 2006년 시의원 낙선 이후 보좌관으로 함께하면서부터다.
이 ‘의리’는 때로 부담이 되기도 했다. 2020년 소병철 전 의원이 전략공천으로 순천에 내려왔을 때 많은 정치인들이 그에게로 갔지만 서동욱은 움직이지 않았다. 2024년 서갑원과 소병철의 폭로전 과정에서는 ‘양복 뇌물’ 녹음이 공개되며 서동욱 역시 논란의 한가운데에 놓였다.
“이해관계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정치인이 되지 않겠다는 초선 시절의 다짐을 끝까지 지켜왔습니다. 그 결과 ‘의리와 신뢰로 기억되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게 됐고 , 저는 그것이 가장 큰 칭찬이라고 생각합니다.”
빼도박도 못하게... 선월 605세대 증축 취소
공약에 대한 질문에 서동욱은 한숨을 섞어 입을 열었다.
“BBQ 특급호텔 가져온다, 이런 식으로 선거 때 던져놓고 책임지지 못하면, 시민들이 느끼는 허탈감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약속이 전제가 되지 않은 공약은 공약이 아니죠.”
그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은, 도의회에서 실제로 해낸 일들이 증명한다. 선월지구 605세대 증축 허가 취소. 이미 공문까지 내려간 사실상 확정된 사업이었다. 민간 사업자 입장에서는 수백억 원의 이익이 걸린 사안이었다.
서동욱은 먼저 공무원들을 분석하고, 아파트 시행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리고 교육감이 빠져나갈 수 없는 논리 구조를 만들었다. 광양경자청이 종상향 근거로 삼았던 교육청의 입장을 도정질의를 통해 뒤집었다.
“일이라는 게 우격다짐으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설득과 논리, 명분을 갖춰서 빼도박도 못하게 만들어야죠.”
그 스스로도 의정 24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고 했다. 겉으로는 순해 보이는 사람이, 아무도 못 뒤집던 행정의 벽을 논리 하나로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물이 바위를 뚫는 방식 그대로였다.
신대가 순천, 개발이익 환수 1806억원
신대지구는 순천의 자화상이다. 당초 7천 세대로 계획됐던 곳이 중흥에 대한 특혜 논란 속에 1만 1730세대로 불어났다. 주차장도 부족하고, 문화시설도 없고, 교통은 막히며, 학교는 모자란다. 도시의 외형은 커졌지만 삶의 밀도는 오히려 압박을 받았다.
서동욱은 지난해 7월부터 전남도의회 특별위원회를 통해 1806억 원 규모의 개발이익 환수를 요구하고 있다.
“순천시가 지난 20년 동안 중흥에 공식적으로 공문으로 개발이익 환수를 요구한 적이 없어요. 말로는 했다 안 했다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는데, 구두가 무슨 강제력이 있습니까.”
그가 말하는 환수의 핵심은 단순한 재정 확보가 아니다. 그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 먼저 주민에게 묻는 구조다. 주차장인지, 문화회관인지, 복지시설인지 결정권을 주민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개발 이익이 다시 도시로, 그리고 시민의 일상으로 환류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교통 문제, 결국 시장의 마인드
서동욱이 목소리를 높이는 대목 중 하나가 교통이다.
“예전에는 8시에 출근하던 분들이 지금은 7시 40분에 나서요. 길이 막히니까 더 일찍 나오는 겁니다.”
조곡동부터 용담동, 서면 일대까지 동천 주변에 아파트가 급격히 들어서면서 생긴 변화다. 문제는 예측 가능한 혼잡이었음에도, 그 부담을 고스란히 시민히 떠안고 있다는 점이다.
서동욱의 해법은 명쾌하다.
“인허가권을 가진 시장이라면 달라야죠. 아파트 열 개 허가해줬으면 시행사들을 불러서 각각 100억,200억씩 부담하게 해서 외곽 순환도로를 뚫어야 합니다. 인프라는 시민 세금으로 메우고, 시행자는 이익만 가져가는 구조는 더 이상 반복되면 안 됩니다.”
실제 시의원 시절, 연향동 아파트 증축이 추진될 때도 서동욱은 “교통 대책 없이는 끝까지 반대한다”고 버텼고, 결국 시행사로부터 도로를 확보해냈다. 말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방식이었다.
만원 주택부터 청년 프리존까지, 삶의 온도를 높이는 정책들
서동욱의 정책 이야기에는 숫자보다 사람이 먼저 등장한다. 만원 주택이 그렇다. 건축비 250억 원을 들여 100세대 공공주택을 짓는 방식보다, 민간이 공급하고 공공이 월세를 보조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공공이 건물 직접 짓고 유지 관리하고 감가상각까지 떠안는 것보다, 민간에 맡기고 임대료만 보전해주는 게 훨씬 효율적입니다.”
청년 정책에서도 접근 방식은 같다. 청년 프리존은 일자리, 주거, 보육이라는 세 가지 문제를 한 공간에서 해결하는 모델이다. 청년을 채용한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해룡·율촌 산단과 지역 청년을 연결하는 우선 고용 모델도 구상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도 벤치마킹할 수 있는 하나의 전형이 필요합니다.”
행정 혁신에 대한 구상 역시 구체적이다. 20년 전 싱가포르에 갔을 때를 떠올렸다. 주차장을 드나들 때 게이트도 없고, 별도의 절차도 없지만 요금은 자동적으로 정산되어 집으로 청구서가 집으로 날아오는 시스템이다.
“우리 행정은 아직도 신청주의예요. 당사자가 직접 가서 신청하고, 서류 내고, 나중에 정산합니다. 이미 행정에 데이터가 있는데 왜 시민이 다시 증명해야 합니까”
데이터 기반 선지급 행정, 그것이 서동욱이 말하는 스마트 행정의 출발점이다.
간부회의 생중계, 투명 행정의 선언
시장이 되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서동욱은 서슴없이 답했다.
“간부회의를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그렇게 했듯, 행정의 의사결정 과정을 시민에게 공개해야 신뢰가 생긴다는 판단이다. 이미 도의회 운영위원장 시절, 상임위원회 회의를 전면 생중계로 바꾼 전례가 있다.
이 말은 노관규 시장 체제의 불통 행정에 지친 순천 시민들에게 단순한 아이디어를 넘어선다. 소각장 문제, 국가정원 논란, 연향들 개발 등 주요 현안이 시민에게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채 추진된 사안이었다. 서동욱은 시민소통위원회, 시민소통관, 24시간 민원센터를 시장 직속으로 두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들어주면 같이 공감하고, 분노할 건 같이 분노하면서 — 그러다 보면 감정도 가라앉고 절차 설명도 됩니다. 민원인을 대하는 태도야말로 행정의 기본입니다.”
정치 철학 두 가지
24년 정치 철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서동욱은 두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공직을 비즈니스로 보지 않는 것.
“공직을 비즈니스로 생각하는 순간,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이 생깁니다. 공적인 마인드가 없기 때문이에요. 시민들에게 위임받은 권한은 내 것이 아닙니다.”
둘째는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지키는 정치다.
“따뜻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 그게 제가 정치를 해온 이유입니다.”
민주노동당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해 정권과 당이 바뀌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가치와 철학을 지켜왔다고 말한다.
“제가 봤을 때 저는 순천에서 꽤 희귀종이죠.”
웃으며 던진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가벼운 농담보다 오래 버텨온 사람의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전남도의회 의장 재직 시절 청렴도 1등급을 끌어낸 경험도 언급했다. “실력으로 검증됐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선에서 리스크가 없는 후보가 시민에게는 가장 안정적인 선택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은 일반적인 주장처럼 들리지만, 서동욱이라는 사람에게서 나오니 그의 이력과 겹쳐지면서 울림이 달랐다.
물처럼, 오래 흐른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노자(老子)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천하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없지만,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기는 데 물만 한 것이 없다고.
서동욱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과장된 공약을 쏟아내지도 않는다. 대신 24년 동안 흔들리지 않고, 원칙을 지키며, 논리로 싸워왔다. 확정된 허가를 취소시키고, 오래된 관행을 뒤집고, 간부회의를 생중계로 공개하겠다고 말한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는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던 안개의 묘사가 나온다. 서동욱은 어쩌면 그런 사람이다. 쉽게 설명되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부드러움으로 사람들을 감싸면서도 부정과 불의와는 흔들림 없이 거리를 둔 사람.
24년을 한 도시에서 살며, 한 번도 사적인 이익을 탐한 적 없고, 말을 바꾸지 않았던 정치인, 서동욱은 스스로 말한 것처럼 희귀한 존재다. 희귀하기 때문에 단단하다. 단단하기 때문에, 부드러워도 된다.